여러분의 죽음까지 정부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죽어주세요!
여러분은 안락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땅에 올 때는 내가 정하지 못했지만 갈 때만큼은 내가 정하고 싶다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보지 않으셨나요? 저도 안락사에 관해 장고할 때마다 저런 생각을 한답니다. 나 이외의 사람에게 폐 끼치지 않고 가능하다면 정신 멀쩡할 때, 내가 내 몸을 가눌 수 있을 때 온전한 정신으로 깨끗하게 주변 정리를 한 뒤 생을 마감하고 싶은 게 이상한 욕망은 아닐 겁니다. 특히 요즘 같은 사회에서는요.
그렇기에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죽을 수 있다 하여 존엄사라고도 하는 안락사, 만약 정부가 대대적으로 나서서 홍보한다면 어떨까요?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는 적당한 슬로건을 내밀면서요. 영화 '플랜 75'는 이렇게 넌지시 제안 같은 협박을 건네며 시작합니다.
속칭 플랜 75, 75세가 되면 나라에서 편안한 죽음을 위해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게다가 죽기 직전에 여유로운 삶을 즐겨보라며 10만엔, 우리나라 돈으로 약 100만원에 달하는 준비금을 주죠. 해보고 싶었던 걸 해보란 뜻입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정부가 공공사업으로 플랜75를 하니, 허가를 받은 민간 사업체도 등장하는 겁니다. 죽기 전에 호화 크루즈 여행 패키지 상품을 버젓이 팔죠.
그런 가운데 주인공인 미치(바이쇼 치에코 역)은 7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합니다. 호텔 청소를 도맡아 하고 있는 그녀는 또래의 친구들과 활동적으로 지내며 제 주변을 가꾸고 정리할 줄 아는 사람이죠. 이런 미치도 막다른 길에 내몰리게 되고, 결국 플랜 75의 상담 공무원인 히로무 (이소무라 하야토 역) 을 만나게 됩니다. 미치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플랜 75를 하겠다고 할까요?
선택이 선택이 아니게 될 때가 오면 어쩌죠?
과연 존엄사는 정말 존엄을 지키며 죽는 게 가능할까요? 어렸을 땐 뭣 모르고 무조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다면, 그걸 나라와 병원이 보장한다면 괜찮은 게 아니냐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제 의견만 말하자면 찬성이긴 해요. 하지만 제 개인에 대해서만, 이란 조건이 붙습니다. 우습지요.
노인 빈곤률이 OECD가입 국가 중 압도적으로 높은 국가가 바로 한국입니다. 거기다 평균 수명은 계속 늘어나고 있죠.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말합니다. 긴 병 앞에 효자 없다고요. 이 단상만 봐도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과연 이런 한국에서 자의적으로 정말 편안한 죽음을 원해서 선택하는 노인이 전체 노인 인구 중 몇 퍼센트나 될까요? 거기다 플랜 75처럼 돈까지 준다고 한다면, 과연 부모에게 선택 아닌 선택을 하게 만드는 자식이 단 한 명도 없으리라 단언할 수 있을까요?
이전에 '다 잘 된 거야'라는 프랑수와 오종의 영화 리뷰를 남긴 적이 있습니다. 이는 아버지의 안락사 선택과 그의 가족들이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플랜 75와는 완전히 다르지요. 이 영화에서 안락사를 선택한 아버지, 앙드레는 부자. 그것도 겁나 부자! 거든요. 이 사람이 선택한 안락사와 플랜 75를 선택한 이들의 안락사가 존엄성을 똑같이 지키며 이뤄졌다고 볼 순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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