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를 밖으로 밀어내는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온 사람, 켄 로치
영국 북동부 폐광촌의 낡고 오래된 펍 '올드 오크'. 그곳을 운영하는 TJ(데이브 터너 역)는 시리아 난민을 비롯한 사회 소외 계층을 돕습니다. 안 그래도 폐광된 후 도시가 빠르게 쇠락하여 한껏 예민해진 주민들은 난민들을 반기지 않습니다. 저런 난민은 꼭 런던의 부촌에 데려가지 않고 이곳에만 보낸다며 정부를 욕하고, 난민들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외치죠. 그런 난민 가운데 사진을 찍는 취미를 가진 야라(에블라 마리 역)는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다며 일갈합니다. 영화 '나의 올드 오크'는 이렇게 다층적인 갈등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켄 로치의 영화답죠.
사람들이 모두 난민을 배척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세상에 원래부터 나쁜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다들 먹고 살기 힘들어지고, 여유가 사라지니 일단 난민을 배척하는 거죠. 하지만 야라는 모여 앉아서 자신을 씹기 바쁜 이들보다는 저와 어울려주는 사람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손을 먼저 잡습니다. 그렇게 TJ와도 가까워지죠. 자신의 현재 상황이 허락하는 한에서 타인을 도왔던 TJ는 올드 오크의 뒤편 개방을 두고 친하게 지내던 이들과 언쟁을 벌입니다. 그의 선택을 두고 야라는 가능하지만 자신은 안 되는 거냐며 비아냥도 잔뜩 들어야 했죠. 하지만 그곳의 개방과 모두를 위해 음식을 제공하여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건 '밥을 먹는다'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됩니다. 어떤 굴욕적인 언사도, 고난도 쉽게 꺾을 수 없는 정이 피어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를 통해 켄 로치가 전하고자 하는 말은 매우 명확하죠.
식구(食口)가 별건가요?
켄 로치는 전작부터 지금까지 정부가 국민에게 해야만 하는 일, 그리고 개인이 또 다른 개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일관된 태도로 말합니다. 정부는 국민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돌보고, 넌 네 이웃에게 더 없이 친절하게 대하라.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단 뜻입니다^.^;; <나의 올드 오크> 바로 직전에 나온 두 작품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미안해요, 리키> 만 봐도 그렇죠.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아지지 않는 현실이 온몸을 짓누르는데도 감독은 우리가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를 냅니다. 그 영화를 본 저 역시도 그 말에 찬동합니다.
때론 뭘 해도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세상은 아주 느리지만 분명하게 나아지고 있습니다. 때론 퇴보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후퇴로 인해 이전에 누렸던 것들의 값어치를 알게 되고, 그것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때도 있고요. 요즘은 전에 없이 파편화 된 사회라고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나뉘어져 있다 한들 보편적으로 원하는 가치는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통해 그런 것들을 한 번 더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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