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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보고듣고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 후기

by 바다라임 2023. 5. 25.

 

단순히 이민자의 이야기라고만은 할 수 없는 이야기

 

* 본 후기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참고해주세요.

 

안녕하세요. 바다라임입니다.

4월 초에 영화 라이스보이슬립스 시사회 를 다녀왔습니다.

다녀온 지가 한참인데 후기 써야지, 써야지 하다가 이제야 올리네요.

개봉한 지도 좀 지났지만 기록을 위하여 늦게나마 후기를 올려봅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소소하게 웃음이 나는 개그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론 그냥 웃을 수만은 없었어요.

이 영화는 단순하게 90년대 초에 이민을 간 한국인의 이야기만 다루고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럼 우선 공식적인 영화 소개부터 볼까요?

 

1990년 모든 게 낯선 캐나다에서 서로가 유일한 가족이었던 엄마 '소영'과 아들 '동현'의 잊지 못할 시간을 담은, 문득 집이 그리워질 따스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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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영은 어째서 이민을 결심하게 되었나

 

영화 속 소영 (최승윤 역)은 어린 나이에 만난 사람과 사랑에 빠져 아이를 가졌습니다. 다만 남편의 병력으로 인해 더는 함께할 수 없게 되죠. 결국 미혼모 신세가 된 소영은 아이를 위해 캐나다 행을 결심합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한국에선 미혼모는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캐나다로 온 소영은 동현 (황도현 역, 황이든 역)을 키우기 위해 공장에 다니며 제 일을 묵묵하게 해냅니다. 하지만 그녀는 무엇이든 감내하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조용히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녀를 희롱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한번 이런 짓을 했다간 가만 두지 않겠다고 따지며, 아이에게도 혹시 널 놀리는 사람이 있다면 참지 말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죠.

 

어린 동현은 태권도를 보여주라는 소영의 말대로 #라이스보이 라는 인종차별적 놀림에 주먹을 휘두릅니다. 그 아이들이 놀리기만 한 게 아니라 안경까지 빼앗아 갔으니 참을 수만은 없었죠.

 

하지만 학교의 태도는 주먹을 휘두른 동현에게 잘못이 있다고만 합니다. 아이들을 인종차별자로 몰아가는 소영을 괴인 취급하죠.

 

그렇게 캐나다에서 사는 두 모자의 시간이 흘러갑니다.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준 변화

 

공장에서 처음 만났던 한국인 동포는 처음엔 소영이 담배 피는 것을 보며 한국적인 쓴 소리를 하지만 십여 년이 지난 뒤엔 그런 말은 하지 않죠. 훌쩍 커버린 동현은 제 생부에 대해서 묻습니다. 어째서 조금도 말해주지 않느냐며 큰소리도 내죠.

 

제 뿌리에 대한 궁금증, 사춘기와 함께 찾아온 어긋난 호기심과 방황 속에서 동현은 길을 잃습니다. 소영에게 큰 소리도 내고, 그녀가 새롭게 만나는 남자친구 사이먼 (안소니심 역) 앞에서도 틱틱거리죠. 이 모든 게 소영의 심기를 거스르는 거야 당연하고요.

 

이런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소영은 동현에게 고국을, 아버지를 보여주고자 함께 한국으로 떠납니다. 낯선 시골, 험한 소리를 하며 반기지 않는 친할머니 (이용녀 역), 그와는 반대로 그들이 누군지 알자마자 호의를 보이는 친할아버지와 작은 삼촌 (강인성 역). 식사를 하고 술잔까지 받은 뒤, 소영은 논밭을 거닐며 동현의 아버지가 묻힌 곳을 묻습니다.

 

여기서 동현은 아버지에게 가기 전 그의 유품을 받고 노랗던 머리를 깎습니다. 렌즈를 잃어버린 뒤엔 다시 안경을 끼고 작은 삼촌과 목욕탕에도 가죠. 그러곤 아버지의 무덤으로 향합니다. 높은 산 위에 있는 무덤으로요.

 

음소거가 된 가운데 소영은 산 위에서 크게 소리를 지릅니다. 이때 영화에선 소영이 몇 차례나 소리 지르지만 처음 한 번만 소리를 들려줘요. 저는 이 장면에서 결국 울음이 터지고 말았네요.

 

 

서늘한 날씨 속에서도 추위를 느끼지 않게끔,

 

영화는 90년대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필름 촬영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나중에 후작업을 한 게 아니란 걸 알고 더 놀랐어요.

비용도 비용이지만, 촬영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겠다 싶었거든요.

그 정성 덕분에 영화가 그 시대의 필름 카메라 향수를 느끼게 하면서도 아름답게 잘 찍혔어요.

 

이런 기술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넵니다.

타지에서 외로웠을, 하지만 견디고 이겨내야 했던 소영의 삶은 생략되어 있지만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죠.

행간을 읽으며 영화를 쫓아가는 내내 작은 울림이 큰 파동으로 변하는 걸 느끼게 됩니다.

아마 이 영화를 본 많은 분들이 먹먹함과 눈물을 비출 수밖에 없는 부분일 거라 생각해요.

 

아이의 출생 신고 문제, 한국이란 땅에서 엄마 혼자 아이를 키울 때 견뎌야 하는 시선. 소영은 그게 아이에게도 어떤 문제를 미칠지 알기에 캐나다행을 선택했죠. 그런 그녀의 삶을 정말 '선택했다'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도 들었습니다.

사실 한국에선 미혼부 출생 신고 과정이 최근에서야 완화됐고, 그간 많은 지원에서 제외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말이 '완화'이지 아직도 어렵다 봐야 할 정도고요.

2023년인 지금도 이러한데, 90년대의 미혼모는 어땠을까요. 얼마나 막막했을지 상상도 되질 않습니다. 더구나 소영이 미혼모가 된 것에도 사연이 있으니까요.

 

 

이상 보고 난 후에도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 라이스보이슬립스 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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