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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리

그렇게 따지면 : 정말 제대로 따진 거 맞아?

by 바다라임 2024. 1. 27.

 

따지다 : 문제가 되는 일을 상대에게 캐묻고 분명한 답을 요구하다.

 

 

  인간관계를 망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수많은 방법 중 아마 가장 시간을 덜 들이고―어쩌면 부지불식간에― 효율적으로 아작 낼 수 있는 건 바로 말로 망치는 것 아닐까.

  얼마 전, 여럿이 있는 단체 카톡방에서 지인이 아쉬움을 토로한 일이 있었다. 속에 쌓아두는 것보단 이렇게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이야기한다고.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그 내용에 모두가 동의한다면 말이다. 누군가 돌이킬 수 없는 말실수를 한 것도, 뭔가 중요한 걸 잊어버린 것도 아니었다. 아주 작은 일. 그거 하나만 좀 고쳐줄 수 없겠냐는 게 대화 내용이었다.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섬세하지 못했다. 미안하다.’라는 말과 함께 대화를 갈무리 지었다.

  대화를 마치고 잠시 멍 때리는데 점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차라리 내가 엄청난 실수를 한 거면 정신머리가 나갔었구나 하며 머리 박고 사과할 텐데 딱히 그런 일도 아니라서 더 화가 났다. 사실 이 친구와의 만남에 있어서 그간 개인 사정 때문에 식사 메뉴부터(알레르기가 있는 건 아니지만) 만나는 시간 등등 나름 굉장히 신경을 써왔다. 당사자도 그걸 알고 있어서 저 이야기를 할 때 ‘내가 많은 배려를 받고 있는 걸 알고 있다’ 고도했고. 그렇기에 열이 오르자마자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네가 그걸 알면서도 이래? 였다. 유치하고 우스울지 모르겠으나 나란 인간이 그런 것을 어쩌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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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들면서 싸우는 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안 그래도 피곤하고 스트레스받을 일이 잔뜩인 현대인 아닌가. 섭섭함을 너무 쉽게 토로하는 사람에게 말을 더 얹느니 조용히 거리를 두는 선택을 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인간관계를 칼로 무 자르듯 할 순 없으니 인터넷에 차고 넘치는 ‘손절한 썰 푼다’까지는 가기 어려울 테고.

  배려 없이 지속될 수 있는 관계란 건 없으니 내가 물러나는 만큼 분명 상대도 그런 일이 한두 가지쯤은 있을 거다. 특히나 위와 같은 상황에서 네가 서운한 게 있었어? 그럼 나도 말해볼까? 라는 건 싸우자는 거나 다름없다. 앞으로 얼굴 아예 안 보고 살 거면 그래도 되겠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럴 떈 어렸을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듣는 격언인 ‘한 번 쏟은 말은 절대 주워담을 수 없다’는 사실을 한 번 더 마음에 새긴다. 일일이 따져 묻는 대신 일단 봉합하고 네가 나를 그 정도로만 생각한다니 나도 그러련다, 하고 마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아마 저 친구와 이전처럼 자주 얼굴 보고 하하호호 웃을 순 없을 것이다. 지금껏 내 어떤 행동이 그렇게 거슬렸다면 이건 어땠을지, 저건 또 어땠을지, 재어보고 계산하게 되니까. 그러다 보면 입을 다물게 되고 마치 직장인 동료 대하듯이 주변을 겉도는 대화만 하다가 각자 집으로 향하겠지. 그렇게 약속을 잡는 빈도도 줄어들 거고.


  그 친구를 두고 이런 생각을 하는데 서운하거나 아쉬운 마음은 들지 않아서, 그게 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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