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꿈을 그리는 작가, 아야코 록카쿠
안녕하세요. 바다라임입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는가 싶더니 금방 또 찬바람이 부네요.
저는 3월 19일에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한가람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에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봄이 아직 완전히 오진 않고 한 발만 걸쳐두고 있나 보다 싶었어요.
역대 최대 규모의 개인전
아야코 록카쿠의 작품을 보면 아마도 '어디서 본 거 같은데'란 생각이 드실 겁니다. 붓이 아닌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고, 또 워낙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데다 협업도 많이 진행하거든요. 한동안 새초롬한 눈끝과 삐죽거리는 입술을 가진 소녀 그림이 많은 곳에서 보이기도 했었죠.
이런 아야코 록카쿠는 치바 현에서 태어나 네덜란드의 니코 델레이브 디렉터를 만나 더욱 작품 활동에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엔 갤러리 델레이브의 소장품을 전시함과 동시에 아야코 록카쿠와 니코 델레이브와 오랜 인연을 보여줍니다. 니코 델레이브가 신인이던 아야코 록카쿠를 보고 바로 작품을 사들이고 거침없이 투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 손이 보여주는 꿈 때문입니다.
맨발의 소녀
어린 아야코 록카쿠는 따뜻한 햇빛과 부드러운 바람, 잔디를 느끼며 공원에서 그림을 자주 그렸습니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그는 가까이에 있는 사물, 특히 그리기에 질감이 좋다는 이유로 골판지 등에 그림을 자주 그렸습니다. 뾰족한 눈매와 심통이 난 것 같은 입술을 그리고 있으면 공원에 있던 사람들이 아야코의 곁에 와서 이야기도 나누고 작품을 선물받기도 했다 합니다.
이번 전시엔 그간 많이 공개되지 않았던 이런 초기 작품이 많이 있습니다. 골판지에 그린 게 특이해 보일지 몰라도 붓이 아닌 손으로 그리는 작가이기에 거칠거칠한 종이에 손이 닿는 느낌을 얼마나 사랑했을까 짐작해보게 되더라고요. 골판지에 그린 그림은 저런 보통 크기만 있는 게 아니라 본인 키를 훌쩍 넘어가는 사이즈도 있답니다. 여담이지만 전 저렇게 큰 건 냉장고 포장 골판지였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했다네요. 😂
나중엔 작품의 더 나은 보관을 위해서 캔버스에 그리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종종 골판지에 그리기도 했다 하네요.
꿈꾸는 손가락
아야코 록카쿠는 사전 스케치나 구상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작품을 그려냈다고 합니다. 배경을 그리다 보면 새초롬한 얼굴의 소녀가 생각났던 아야코 록카쿠는 그대로 그 소녀를 캔버스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소녀의 많은 생각들이 배경에 녹아들죠. 그림 속 어린 아이가 그린 것처럼 엉성한 동물과 해골, 열쇠나 집 따위가 무작위로 놓여 있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멀리서 보면 아이가 급히 뛰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뒤엔 하얀 토끼와 꽃도 있구요. 그런데 가까이서 보면 작은 토끼들, 혹은 그와 비슷하게 보이는 수많은 동물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뿐아니라 물이 흐른 것처럼 위에서 아래로 물감이 흐르고 있어요. 그걸 알고 다시 멀리서 보니 마치 작은 동물들과 아이가 비를 피하는 그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비범한 한 문장
전시가 끝나고 나올 무렵 하나의 문장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야코 록카코의 인터뷰에서 발췌한 것인 듯했는데, 사진 찍는 걸 깜빡했네요. 아마 '사람들이 제 그림을 보고 어렵지 않으니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내용과 비슷한 문장이었어요. 전 그게 굉장히 비범하다고 느꼈어요.
많은 이들이 미술을 '과목' 중 하나임과 동시에 예술이라 어려워야 한다고만 생각하죠. 그래서 현대미술을 보며 아무렇지 않게 '저건 나도 하겠다'라고 무시합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 중에 정말 시도해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기에 그게 쉬운 일이라고 떠벌릴 수 있다는 걸 우린 이제 잘 압니다.
그럼에도 아야코 록카쿠는 자신의 그림이 쉬워보였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나도 할 수 있겠다는 게 빈정거림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림을 그리고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길 바라는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해당 전시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2024년 3월 24일 일요일까지 진행됩니다. 기한이 많이 남지 않았지만,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가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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